서양의 노블리즈 오블리제는 동양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연계.
정치는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봉사가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한다. 봉사보다 군림하는 자리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번으로 끝난다. 대학에서는 교수학습센터라는 제도가 있다. 어떻게 하면 강의를 효율적으로 하는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강의를 잘하는 것에 기준을 두지 않는다.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정치도 국민이나 해당 주민을 떠나서는 옳은 정치를 행하지 못한다.
그 옛날 공자께서는 이미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도했다고 한다. 공자는 네 가지 즉 학문(學文), 실행(實行), 충성(忠誠), 신의(信義)를 가르쳤다. 그래서 논어의 매력은 언어의 함축미에 있다.
오늘날 평생학습이 이미 논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식사회에서 논어의 부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배운 만큼 행하는 일이다. 즉 실천하는 것이다. 솔선수범하는 행동이야말로 논어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중심축이다.
공자는 말만 앞세우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멀리했다. 첫째도 실천, 둘째도 실천하면서 언행일치의 삶을 요구했던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야말로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배우는 것은 하드웨어라면 실천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다. 학습과 실천을 함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면장이 되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다. 일단 면장이 되고 나면 그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오늘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많지만, 그 자리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보면 시간은 지나가고 만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 선거에서 공약이라는 것이 있다. 대충 내가 당선되면 이렇게 저렇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면 공약의 20~30%도 이행하지 못한다. 이것이 언행일치가 되지 못하고 당선을 위해 거짓공약을 한 것이다. 정치도 열정을 가져야 한다. 대충 임기나 채우는 정치는 지향해야 한다.
왜 정치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가. 존경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인데, 배운 만큼 실천하지 못하면 결국 주민들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국어사전을 보면 ‘덕(德)이란 고매하고 너그러운 도덕적 품성이나 윤리적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덕은 지도자가 도덕성, 윤리성, 솔선수범이 뒷받침 될 때, 주민들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며 따르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다.
덕이 있어야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날 덕의 개념은 어떻게 해석 되어야 하는가. 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주민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투명성과 윤리성은 필수조건이다.
서양의 노블리즈 오블리제(noblesse oblige)나 동양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그대로 연계 되어 있다. 모름지기 정치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로 승화해 갈 때 우리 정치도 진일보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