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폭력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과거 남학생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이제 어린 여학생까지 나서 조폭을 능가하는 폭력으로 세상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비뚤어진 가지를 쳐주고 영양분을 주는 ‘마음의 영양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경향 각지에서 청소년 폭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학교나 유치원에서 ‘왕따’를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우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를 읽던 자녀가 흘리던 수정 같은 눈물을 보았는가, 자녀가 듣고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하루 한 번이라도 자녀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쳐다 보았는가, 명령어나 지시어를 뺀 대화를 해 보았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가정은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는 ‘퇴락한 정원’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없이 성장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고 한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받지 못하고 과잉보호와 억압 속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남을 사랑하는 법,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어렵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가 아빠, 엄마의 사랑과 지도와 관심을 필요로 할 때가 분명히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 당신들은 너무 바빴어요, 할 수 없이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갔고 그들로부터 잘못된 지도를 받았답니다. 그 결과 지금 내 영혼은 아주 못쓰게 되고 말았어요.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이는 모두 씨를 뿌리고 가꾸지 않은 정원사를 부모로 둔 까닭이다.
돌보지 않는 정원을 바라보고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예전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전통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안에는 생명력과 사람이 있었고, 삶의 의지가 넘쳤으며 작은 사회질서가 있었다. 또 가족 간에 우애가 있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핵가족과 독신가구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것이 돼 버렸다. 어떻게 하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사랑 한다’는 말이고 그 다음으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쉬어라’라고 한다.
아이들을 골방에서 마당으로 불러내자. 그리고 가끔씩 아이를 안아주고 좋은 추억이 될 만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자. 또 아이가 힘들어 할 때 간단한 사랑의 메시지를 써주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자. 아이와 같이 노래를 불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늘 이런 얘기도 해주어야 한다.
“나는 네가 일등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보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거든”이라고 말해보자.
자녀는 창조주가 부모에게 준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선물이다.
따라서 부모는 비뚤어진 가지를 쳐주고 영양분을 주는 ‘마음의 정원사’ 역할을 사랑으로 완수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몹시 불안정 하지만 가정이 완충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현대사회는 경제적으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정이 많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 들어와 잠을 자는 아이 얼굴밖에 못 본다는 가정이 많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하루 24시간 중 자녀와 만나는 시간은 분명히 있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네가 엄마, 아빠의 희망이다.”라고 속삭여 주면 아이도 힘을 얻어 비록 자주 만날 시간이 없는 엄마, 아빠라도 아이의 마음속에는 항상 부모가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배려가 훗날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정원사가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나무나 꽃은 시들기 마련이고, 곧게 자라야 할 가지가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어나 볼 모양이 없는 나무나 꽃이 될 것이다. 사랑하라, 또 사랑하라. 사랑은 사람이고 동식물이고 사랑하는 만큼 아름답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