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정부·국회 협의와 참여속에 국민들의 동의 공감대 형성 따라야...
개헌 논의는 블랙홀로 빠져들게 할 수 있다며 정치권의 금기로 삼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권을 향해 개헌의 필요성을 먼저 끄집어냈다.
이제 개헌 물꼬가 트였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회담 자리에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사실 야당의 전략적 무기나 다름없었던 개헌 카드가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그것도 문 대통령으로부터 먼저 재론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개헌 문제는 블랙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더 큰 밑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은 개헌 이슈보다 안보 지키기와 민생이 먼저이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개헌 문제를 끄집어 낸 것은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30년 만에 바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 사이에서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높고, 그 동안의 괄목할 만한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실질적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당연한 진리를 국민들이 국민 대표들 앞에 당당히 확인시켜준 역사적 사건이라 대부분 국민들은 믿어왔다.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회도 개헌특위를 즉각 가동하고 대통령도 국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국회에서 의결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제안과 동시에 ‘개헌 정국’에 돌입했다고 봐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개헌 논의는 국민적 여론과 충분한 공감대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4년 중임제 등 권력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5·18 37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거듭 천명했기 때문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방식은 다름 아닌 개헌을 통해서다.
일각에선 개헌이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제1 야당인 한국당이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 만에 본격화되는 개헌 논의가 정당의 당리당략에 편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헌논의가 항상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촉발되고 개헌이 정치인들이 짠 정치일정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2백여명 가까운 의원이 개헌론자일 정도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힘을 실으면서 개헌은 앞으로 정치의 최대 화두가 될 게 분명해졌다. 어찌됐든 지난해 박 前대통령이 개헌론 거론이후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불을 지핌으로써 정치권이 급속도로 개헌정국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개헌론은 그동안 마그마 같은 존재였다. 문 대통령이 마그마가 분출할 통로를 열어주었으니 개헌정국 시계는 빠르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의 개헌추진 선언이 '깜짝 카드'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에너지가 분산될 위험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권은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야권은 문 대통령은 물론 야당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개헌 움직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문제는 ‘어떤 개헌이냐’이다. 총론의 합의가 각론의 합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권력구조만 해도 여야와 의원 개인의 입장에 따라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혼재해 있다. 합의점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한 건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어 어느 제도가 ‘옳다’ ‘그르다’는 식의 접근법은 지양돼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최적화된 권력구조가 우선 고려 대상이 돼야 함은 불문가지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축소·조정하는 것 못지않게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국회의원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 마련 또한 중요하다.
책임정치 구현과 주권재민 원칙을 보다 확고하게 하기 위해 기준 미달 국회의원의 지위를 박탈하는 국민소환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할 시점이 됐다. 이미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에게 적용되고 있는 소환제도를 국회의원만 그 대상에서 제외시킨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개헌 논의와 함께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제도 개선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진정한 개혁이 완성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의결된다.
야당들도 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일제히 환영하고 나서 헌법 개정이 정권 초반부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개헌의 칼자루를 누가 쥘 것인지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것이 급선무다. 야당은 개헌 주체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청와대가 직접 나설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개헌 논의의 핵심인 권력구조 방향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있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할 것인지 의원내각제를 할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불거질 수 있다. 권력구조 문제와 맞물려 선거구제 개편도 개헌 과정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