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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논단] 신흥 사찰에 부처님 진신사리 과연 실존하나?

기사승인 2016.11.03  09: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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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성 중들이 앞장서 불자를 우롱 능멸한 진신사리 진짜? 인위적 석물로 가공한 가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사찰에서는 적멸보궁이라 말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수미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고, 다만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적멸보궁이라 하면 자장율사의 5대보궁을 주로 열거하나, 그 외에 금강산 건봉사, 대둔산 안심사, 지리산 법계사, 선산 도리사 등 많은 적멸보궁이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자장율사가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에 당나라에서 선량산의 문수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그 화현 보살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 1벌을 받아 귀국하였다.

이에 자장율사가 신라의 대국통이 되어 왕명에 따라 당시에 계율종의 본산인 양산 통도사를 창건하였다. 그 사리를 삼분하여 각각 황룡사탑과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5대 적멸보궁은 양산의 통도사, 평창 오대산 상원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이다.

이 중 정선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친히 가져 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였는데, 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반으로 나누어 봉안한 곳이라고 한다.

 

1. 경남 양산의 통도사 적멸보궁

영축총림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최초로 황룡사탑과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져, 전국의 모든 출가자가 계를 받는 불사리계단 즉 금강계단이 통도사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며, 이로 인해서 통도사는 불보사찰의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조정의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찿아 와서 계단에 예배하고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함을 열어 보았는데, 처음에는 긴 구렁이가 석함을 지키고 있었으며, 두 번째는 큰 두꺼비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2.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고려 때 고승인 일연 스님은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라고 오대산을 말하고 했는데, 비로봉 아래 적멸보궁이 있고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꼽는데, 어쩌면 이 산 전체가 하나의 불탑이요, 부처님의 진신사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간절한 기도로 만났던 문수보살의 화현신을 친견한 후 귀국 후 신라의 대국통을 지내며 왕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나 문수진신을 친견하는 꿈을 버릴 수 없어 오대산으로 들어와 문수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원녕사, 갈래사 등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를 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3. 강원도 인제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자장이 양산 통도사와 경주 황룡사 9층탑에 사리를 봉안했으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다 신령한 장소에 봉안하고 싶어 발길을 북으로 돌린 스님은 먼저 금강산을 찾아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시작한지 이레 째 되는 날, 갑자기 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오색찬란한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스님은 기도의 감응으로 알고 봉황새를 따라갔는데, 봉황새는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다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유심히 살펴보니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 이 불두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있는 듯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 밑에 불뇌사리를 봉안하고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는데, 절 이름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봉정암’이라 붙였다는 것이다.

자장율사의 간절한 기도에 의해 절터를 잡은 봉정암은 이후 불자라면 살아생전에 한 번은 꼭 참배해야 하는 신앙의 성지로 정착되었다.

4.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자장율사는 이때 당에서 가지고 돌아온 사리의 일부를 기도하는 곳마다 봉안했는데 사자산도 그 중의 하나로, 자장율사가 처음 창건할 때의 사찰명은 흥녕사며 우리나라 불교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은 신라 말 헌강왕 때 징효절중에 의해 이곳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이 들어서면서부터라는 것이다.

5.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정암사의 옛 이름은 원래 갈래사였다. 갈래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시대 대국통을 지낸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에 있는 수다사란 절에 머물고 있었는데,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태백산 갈반지에서 만나자’고 한 후 사라졌다.

스님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그곳’ 이라며 석남원을 지었는데, 이곳이 바로 갈래사라는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신흥 사찰에서도 진신사리가 아닌 곳도 왕왕 있을수 있습니다. 특히 도심 신흥 사찰의 경우는 대다수 태국이나 버마 스리랑카 등지의 국적불명 스님들의 사리나 석물로 교묘히 조각된 가짜 사리가 부처님 진신사리로 진짜로 유통되어 친견을 빌미로 불자들에게 시주금을 강요하는 사기성 상술로 가짜가 판매되는 사리가 비일비재하게 많다. 특히 도심의 신흥 사찰에서 생활불교를 주창하며 많은 신도들을 유치하기 위한 사기성 수단으로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들은 사찰에서 왜 목탁을 칠까요?

목탁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인 줄 알고 있는 이가 많으나, 이는 그렇지 않다. 목탁은 중국의 옛날 제도에서 나온 말이다. 탁은 방울을 가리키는데, 옛날 중국에서 정령을 전달할 때, 그 갈래에 따라 쇠로 만든 추를 단 금탁을 사용하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추를 단 목탁을 사용하기도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금탁은 주로 무사에 관한 명령을 내릴 때 울렸고, 목탁은 문사 및 법령에 대한 교령을 발할 때 사용하였다 전해진다. 옛날 통신수단이나 전달매체가 발달하지 못해서, 대중에게 알릴 일이 있을 때 금탁이나 목탁을 사용했던 것이다.

즉 관에서 군사와 관계되는 일을 백성에게 알릴 때는 금탁을 두드리고, 일반 행정이나 문교에 관한 사항을 알릴 때는 목탁을 두드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전달하였던 것이다. 특히 목탁이라는 말은, 이런 데서 그 뜻이 이어 바뀌어, 세상 사람을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요즘은 신문을 가리켜 사회의 목탁이라 하는 것도 그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절에서 사용하는 불구의 하나인 목탁도 여기에서 빌려와 이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 사용하는 목탁의 원래 이름은 목탁이 아니라, 목어(木魚)라 했다. 목어라 하면, 속이 빈 나무로 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매달아 놓고, 생막대기로 두드리는 불구를 생각하게 된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것을 둥글게 변형시켜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을 목어라 하였다. 그러니까 목어에는 물고기 모양으로 된 것과 그 변형인 둥근 모양으로 된 것의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둥글게 변형시킨 목어를,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옛 제도에서 사용했던 목탁이란 이름을 빌려와 부르게 된 것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목탁과 목어는 당나라 때의 문헌인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나오는데,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가 졸지 말고 도를 닦으라는 뜻에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유래담은, 수행을 게을리 한 어느 동자승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이다. 옛날, 큰스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한 동자승이 있었는데, 수행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만 저지르다가, 그 업보로 죽어서 물고기의 몸을 받고, 게다가 그 등에 나무까지 자라나서 바람이 불 때마다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물고기는 옛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 이 물고기는 뉘우치면서 말하기를,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걸어두고, 두드릴 때마다 잘못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게 해 달라고 하여, 그 말을 따라 목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시대를 내려오면서 견강부회한 면이 강하여 본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물고기는 인도와 중국에서 다 같이 신성시된 동물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등용문의 고사가 지닌 의미와 같이 어변성룡, 즉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토템사상이 있는바, 목어 목탁의 의미도 여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곧 물고기가 노력을 통해서 용이 되듯이, 중생도 수행을 쌓아서 부처가 되라는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목탁은 원래 목어를 작게 개량한 것으로 나무를 둥글게 깎고 속을 파낸 것이다. 손잡이는 물고기의 꼬리이며, 갈라진 것은 물고기의 입, 갈라진 끝에 둥글게 구멍을 판 것은 물고기의 눈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목탁을 두드리는 이유는 목어를 두드리는 이유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목어는 좀 큰 절에 가면 범종이랑 큰 북(법고)과 구름 모양의 쇠판(운판)과 함께 종각에 걸려 있는 나무 물고기입니다.

목어를 두드리는 이유는 첫째, 물속에 사는 중생의 고통을 제도하기 위해서, 둘째, 물고기는 눈꺼풀이 투명하여 밤에도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그래서 늘 깨어 있으라, 게으르고 태만하지 말라는 뜻으로 목어를 두드립니다.

목탁은 기본적으로 목어를 축소한 것이니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작게 만들어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일상적인 도구의 의미가 있는데, 공양(밥먹는 것)이나 운력(함께 일하는 것), 운집(대중이 모이는 것)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또 대중이 모였을 때 일어나고 앉고 절하는 신호용으로 사용합니다.

각각의 신호에 따라 목탁을 치는 방법이 다른데, 이를테면 공양은 한 번 길게 내리고, 운력은 두 번 길게 내리고, 운집은 세 번 길게 내린다. 특히 염불할 때는 염불의 박자를 맞추고 호흡과 독경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신호용으로 목탁을 칩니다.

독경 소리든 목탁소리든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숨이 찰 때는 목탁 소리를 점점 크게 하면서 목소리를 줄이고 이윽고 목탁을 치면서 숨을 쉽니다. 숨을 들이쉰 뒤에는 목탁소리를 줄이거나 끊고 독경을 큰 소리로 하고, 또 숨이 차게 되면 목탁을 치면서 목소리를 줄인 뒤 숨을 쉽니다.

목탁은 일정한 빠르기로 두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경전을 독경하면서 빨랐다가 느렸다가 한다면 그것은 목탁을 잘못 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독경 호흡이 좀 빠른 경우에는 목탁을 빨리 치고, 독경 호흡이 느린 사람은 목탁을 좀 느리게 칠 것입니다.

이강문 주필 yangpa@yangpa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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