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한축인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 또 목숨 잃었다
결혼으로, 오로지 자신의 남편만을 보고 가족과 멀리 떨어져 타국에서 생활하는 이주여성들에게는 언어부터 생활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 사회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이주여성들이 환경적응과 가정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7월 베트남 출신 아내와 두 살배기 아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모습이 SNS상에 동영상으로 급속히 전파된 한국인 남성 A씨가 경찰에 전격 구속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진술하는 등 적반하장의 반성없는 태도를 보여 사회적 공분을 샀다.
동영상은 베트남어로 "한국은 정말 미쳤다"라는 글이 붙었다.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배우자 도움 없이 체류 연장 등이 어려운 상황이나 상대방 국가에 대한 차별의식 같은 특수성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여전한 가부장적 인식 그리고 가정폭력을 '집안일'로 치부하는 경향 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 국제결혼피해자 단체에서 이주 여성이 남성으로 하여금 구타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나라 사회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A씨는 아내가 평소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위의 변명을 했다.
앞서 입장문을 발표한 국제결혼피해자 단체는 국제결혼 중개업체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이혼한 남성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욕설과 폭행, 생활비 미지급 등 외국인 아내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남성의 상담 건수가 전체 1만1천여 건 중 수백 건이 넘는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폭행을 유도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정말 많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일부 남성들이 그릇된 결혼관을 가지고 국제결혼에 임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결혼관은 임신과 출산, 양육이 아내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일부러 폭행을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반대로 말하면 특수한 경우에는 배우자를 때려도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결혼 중계업체를 통해 결혼한 사람들은 ‘돈을 지불했는데 왜 (성관계나 가사일 등을) 거절하나?’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자신이 성관계나 임신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자격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다문화 혼인건수는 2만4천여 건으로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매년 다문화 부부가 1만 쌍 이상 이혼하고 있는 점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다문화 가정에서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부부의 연령차가 10세 이상인 경우가 40%가 넘는다. 이러한 경우 한국인 배우자는 결혼과 출산 자체에만 관심을 가질 뿐 외국인 배우자의 출신국가와 언어, 문화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는 통계도 함께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말 법무부는 결혼 이민자의 피해 지원과 안정적인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가정폭력 전과자의 결혼을 위한 외국인 초청은 불허하는 ‘결혼 이민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개선안에 따라 한국인 배우자가 ‘가정폭력범죄’로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경과기간에 관계없이 결혼을 위한 외국인 초청을 불허해 입국 전 단계부터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제도도 개선·강화되고 다문화 가정의 이혼률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지난 16일 또 외국인 아내를 살해한 한국인 남성 B씨가 체포됐다. B씨는 57세인 것에 반해 살해된 여성은 29세로 나이 차도 컸지만, 특히 여성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지 3개월 만에 참변을 당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B씨는 베트남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한 후 한국으로 왔지만, 평소 있던 가정불화로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다문화 가정을 소재 삼는 방송 예능 프로들에서 보듯 낯선 한국 땅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들 또한 적잖다. 국가인권원회가 2017년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42.1%에 달했다. 형태도 폭행, 흉기 협박, 성적 학대에서부터 욕설, 출신국가나 부모에 대한 모욕까지 다양하다.
아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더 많았는데, 이유는 '창피해서'와 함께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몰라서''아무 효과 없을 것 같아서' 순이었다. 정부가 이주여성상담소를 제도화하고 쉼터 등을 운영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셈이다. 쉼터로 옮겨도 몇달 뒤에는 다시 배우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백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아동학대인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은 끝까지 무관용으로 대응하기 바란다. 피해자와 아동들이 가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은 이주민 200여만명 가운데 11% 이상이 결혼이주자인 '다문화 사회'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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