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불교계에서 활동하였던 수도승들의 암살이라는 이상한 주제로 애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승적(僧籍)이 “대한불교 조계종”에 있기 때문에 이 애기는 내가 조계종에 몸담아 살면서 직접 보고들은 얘기이기 때문에 조계종에서 간간히 벌어진 수도승들의 암살(暗殺)사건에 대한 파일이라고 하겠다.
나는 1970년대 초 합천 해인사에서 오늘의 ‘해인승가대’를 11회로 졸업하고 난 뒤 곧장 해인선원으로 사교입선(捨敎入禪) 한 후 3년동안을 선수행자로 살았다. 당시 해인사 선원의 최고 어른은 방장(方丈)인 이성철(李性徹)스님이었다. 훗날 이성철스님이 조계종 종정직에 추대되었을 때, 나는 서울 조계종 총무원에 있는 종정사서실에서 4년간 사서로 근무하는 인연도 있었다.
나는 성철종정 이전에 고암(古庵) 종정 때부터 불교신문사 편집국장을 하면서 고암종정의 법어, 축사, 격려사 등의 글을 써왔다. 나는 또 기인한 인연이 있었다. 훗날, 조계종 불교개혁을 위해 가장 많이 헌신하신 월하(月下)종정을 모시고 월하종정이 주도하는 정화개혁총무원에 총무부장직을 맡으면서 월하 종정의 홍보를 하는 기이한 인연이 있었다.
상기도 못잊을 추억은 월하 종정스님은 조계종의 미래를 당부하며 첫째, 은처승(隱妻僧) 정화와 둘째, 매불(賣佛)로 부정축재하는 자들을 정화해야 한다는 고준하고 간절한 법어를 주시던 광경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전국 전통 사찰을 하루아침에 장악한 것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은덕이요, 권력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불교집안이었다. 근거는 이승만의 소년시절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옥수동의 미타암과 삼각산 기도터인 문수암을 찾은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토로한 분이다. 또, 이승만은 미국에서 돌아와 대통령이 된 후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노구(老軀)를 무릅쓰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문수암을 찾아 그 먼 오르막 산행 길을 걷다 쉬고, 걷다 쉬고 하면서 기를 쓰고 문수암을 찾았다.
그 옛날 어머니를 추억하며 문수암을 찾은 것이다. 청년 이승만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여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출옥한 후 미국 기독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할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불교 승려의 인식은, 승려는 결혼하지 않고 나라와 중생을 위해 진리의 깨달음을 전하고 자비로서 헌신 봉사하는 수도승으로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이대통령에게 미국에서 국빈이 찾아왔다. 이대통령은 국빈을 고색창연한 사찰로 안내하려고 정릉 경국사로 안내하면서 “승려는 결혼하지 않는 독신승, 즉 비구, 비구니”라고 소개했다. 국빈은 한국 승려를 “결혼하지 않는 천주교의 신부, 수녀를 연상하면 되겠느냐”, 고 묻고, 이대통령은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때 이승만의 눈앞에 가슴이 철렁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경국사 법당 옆 빨랫줄에는 여인의 팬티, 속 옷, 치마, 저고리, 아기 지저귀 등 옷들이 즐비하게 걸려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통령은 대경실색하여 국빈에게 빨래 풍경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법당 쪽으로 황급히 안내했다. 법당 안을 안내 하던 이대통령은 또 못 볼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법당안 불상 옆 양 기둥에는 색바랜 하연 천의 주련(柱聯) 있는 데, 그 천 가운데는 “천황폐하 만만세(天皇陛下 萬萬歲”, “황군무운장구(皇軍武運長久)”의 검은 색 글자가 크게 쓰여져 있었다. 경국사 승려들이 조석 예불 때 하는 기도문이었다. 이승만은 안면에 경련을 일으키며 내심 외쳤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일제를 위해 기도를 하다니…”
돌아온 이대통령은 하룻밤 내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다음날 분개한 표정으로 비서들을 불러 이렇게 하문했다 한다. “일제불교에 내쫓긴 정통 비구불교의 승려는 씨가 말라 버렸나? 어디 남아 있으면 찾아 당장 나에게 데려오게.”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한 초청에 의해 일제불교에 숨죽여 산속에 선수행 등 공부를 하던 4∼5명의 노비구승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전통불교를 지켜온 노승들의 그간 고초의 얘기를 듣고 위로하고, 장차 전국 대소 공찰(公刹)에 비구승이 살 수 있도록 조처하고, 비구승들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기도하면서 수행할 것”을 대통령으로서 도와주겠다, 약속했다.
불교정화는 1954년 5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이 전통불교사원에서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요지의 유시(諭示)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었고, 도합 6차례나 이대통령은 유시를 발표하여 대처승를 몰아내고 비구승에게 전국 전통사찰을 계승하게 하였다.
해인사 정화 때 결사 저항하는 대처승들에게는 군경(軍警)까지 동원해 주었다. 또 이대통령은 특명을 비밀리에 내렸다. 이대통령은 “일제불교인 대처불교를 정화하고 우리 전통의 비구불교를 회복하라”는 특명은 당시 조폭인 명동파, 거지왕 칭호를 듣던 김춘삼 부대에게 불교정화를 돕도록 하였다. 총무원 호법부장을 지낸 임동철(선운사)스님은 명동파의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마침내 비구불교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장엄하게 출현하여 한국불교의 총본산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불교정화는 1954년부터 시작해서 1965년도 까지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내쫓긴 대처승 측에서는 불교정화를 주도하는 비구승측 승려들에 대하여 복수십으로 암살작전(暗殺作戰)을 시작하였다.
내가 불교신문사 편집국장일을 보면서 고암종정, 성철종정 등의 일을 보면서 수집한 암살의 첩보확인은 조계종 전 종정을 지낸 진주 출신 이모(某) 종정이 기습으로 쇠파이프 등으로 타살된 것과, 역시 불교정화를 도운 총무원장이 새벽 멀리 떨어진 화장실 길에서 타살 되었다. 또다른 총무원장은 교살(絞殺)되었다. 그 외에 불교정화 때, 칼에 찔려 죽은 승려들, 그 외에 커피 등 음식물로 암살당한 승려는 부지기수였다. 나는 그분들의 명예를 위해 법명을 공개하지 않는다.
내가 전국 각 사찰에서 벌어진 암살 사건에 대해 첩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는 첫째, 사찰에서 얻는 막대한 금전에 대한 이해관계가 암살 타킷의 첫째였다. 둘째, 치정괸계도 있었다. 셋째, 좌-우사상의 갈등과 대립의 암살도 있었다.
따라서 수도승으로써 장수하려면, 첫째, 검은 부정한 금전이 막대하게 나오는 사찰에 탐욕을 부리면 안되는 것이다. 둘째, 여자에 몸을 뻬앗고, 돈을 차용해서 떼어먹는 짓을 하는 자는 피해를 당한 여자가 차와 보약, 음식물로 황천길로 보내버린다는 것을 분석할 수 있었다. 또 북의 첩보부에서 직파하는 붉은 승려들을 경계해야 했다.
나는 월하 종정의 불교개혁정신을 봉대하여 개혁회의 총무부장으로 전력을 다했으나, 1998년 12월 23일 새벽 4시 20분경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전경 6천여 명을 보내 불교정화를 막고 자신이 좋아하는 승려들에게 조계종의 종권(宗權)을 잡게히는 음모를 깨닫고, 나는 중국식 표현으로 이해관계와 은원(恩怨)이 난무하는 강호(江湖)를 떠나듯, 혼자 외롭게 임간(林間)에 은거하여 밤에는 우주를 관찰하고, 낮에는 만권의 헌책속에 코를 박는 개인의 잔여인생을 살고 있다.
결론과 제언
권부는 종교를 통치에 이용하려는 것은 똑같다. 일제는 총독부에서 조선불교를 장악하여 시줏돈과 감투를 주어 승려들에게 일제에 충성을 바치게 하더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제불교의 대처승불교를 끝내게 한 후 결혼하지 않는 비구불교에 가치를 주어 역시 종정, 총무원장 등 감투를 주어 통치에 이용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대는 문화공보부 장관과 정보부에서 한국불교의 감투를 좌지우지 하였다.
작금은 어떤가? 일부 승려는 좌파 대통령을 부처님같이 섬기며 아부하고, “노다지”같은 전국 명산 명찰에서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재벌부럽지 않게 살면서, 북의 권부에도 달러 박스를 바치며 보험들듯 충의를 표하고, 국내에는 더 크게 권부에 돈을 바치는 복마전(伏魔殿)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찰하건대 이승만 대통령이 찬사하던 비구불교는 이제 거의 유명무실(有名無實)할 뿐, 이번에는 은처자(隱妻子)의 승려시대라는 항설(巷說)이 난무한다.
매불(賣佛)해서 처자에게 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승려인지, 가짜 무당인지 분간이 안되는 자들이 부처를 욕되게 하고 있다는 암울한 시대라는 항설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부처를 닮으려는 참돤 수행자와 불교의 깨달음을 후세에 전하는 진짜 수도승과 모든 종교의 자유가 있는 자유대한을 수호하는 수행자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찾아다니고 있다. ◇
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