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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 故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향년 97세로 영면.

기사승인 2019.06.11  08: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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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권노갑 장상 장례위원장으로 사회장 추진...빈소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치 국립현충원"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영부인)가 10일 오후 11시37분 향년 97세로 별세(영면. 소천. 승하. 붕어)했다. 1922년 생인 이 여사는 우리나이로는 98세다. 분향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봉분을 바라보는 이희호 여사. 말로만 국장(國葬)을 치렀던 작년 8월. 국민의 열광적인 ‘김대중!’ 외침에 운구차에서 내려 “제 남편을 이렇게...”라며 감사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11일 자정 무렵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이 여사의 병세 소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 여사는 그동안 노환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이에 대해 이 여사를 가까이에서 모셔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희호 여사님께서 오늘 2019년 6월 10일 23시 37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하셨습니다"라고 적은 뒤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라고 확인했다.

이어 박 의원은 기자들에게 "가족은 (이 여사를) 사회장으로 모실 것을 고려하며 장례위원장으로는 권노갑 평화당 상임고문,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모시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당 대표들을 사회장 장례위 고문으로, 현역 의원은 장례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한편 이날 세상을 떠난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저명한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떠나 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국내에서는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했고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여성 인권을 외쳤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을 때 고 정일형 이태영 박사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잦은 국회의원 선거의 낙선 끝에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됐지만 5·16 쿠데타로 정치 낭인이 된 상태였다.

더구나 당시 이 같은 고초 등으로 부인과 사별한 김 전 대통령은 아들만 둘이 있는 홀아비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일형 이태영 등의 지인들과 국내 정치에 대해 토론하며 뜻을 함께한 뒤 그해 5월 결혼했다. 그리고 이후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가 됐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1971년 대선 실패 후 이후락 중정에 의해 동경에서 납치되어 동교동에 연금된 뒤는 물론 숱한 옥살이와 사형수의 아내로서 고난을 함께했다.

즉 박정희 정권의 동경 납치, 동교동 연금, 3.1구국선언 후 구속, 전두환 정권의 내란음모 사건 구속 후 사형선고 등이 이어지는 동안의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감내했고, 1980년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는 대대적 구명운동에 나섰으며 이 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김 전 대통령을 사형수에서 감형하지 않고 형 집행정지 상태로 미국으로 추방했는데 이때도 이 여사는 남편인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출국, 타의에 의한 망명자가 되었다.

미국 망명 4년 만인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귀국, 다시 동교동에 연급되었으나 1987년 민중항쟁에 의해 연금에서 풀려난 김 전 대통령을 내조, 1987년 대선, 1992년 대선을 함께 치렀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도전은 실패했으며 다시 1993년 영국으로 출국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했다.

이 같은 고난 끝에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4전5기로 대통령에 단선되었으며 이 여사는 70대가 넘은 나이로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김 전 대통령을 내조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을 동행해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으며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잡아왔고, 마지막까지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의욕적으로 대북 사업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영광 뒤에는 또 김 전 댜통령의 세 아들들의 비리연루 감옥살이도 겪는 시련도 있었고, 최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 인권과 여성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강문 대기자 news@yangpatv.kr

<저작권자 © 양파티브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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