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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문칼럼] 용꼬리 보다 뱀머리가 되고 싶은 사람들...

기사승인 2019.02.21  13: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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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이란 여론을 들어 국민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길도 물어보고 가야 한다.

▲양파방송.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세상 살이가 늘 그래왔지만, 우리사회는 일등 만을 원하고 우두머리만을 원한다. 근래 자유한국당 대표 선거를 보면 꼭 대표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대표면 대표로서 할 일을 하면 되는데, 그게 더 욕심을 부려 대표를 징검다리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좋다. 대통령을 하겠다면 말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질이 있느냐에 방점을 두면 ‘글쎄올시다.’다. 시저가 어느 산골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로마의 장군이 지나간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구경을 하였다.

그 마을의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며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시저의 부하장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 촌장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임을 뽐내고 있군요.” 이에 시저가 그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지 마라. 그는 어쨌든 이 마을에서 첫째가는 사람이다. 나 또한 로마에서 두 번째 사람이 되기보다는 작은 마을에서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다.” 리더가 되는 것은 반드시 우두머리가 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고 자존심, 또는 자부심을 갖는 다는 뜻이다. 자부심, 즉 내가 사람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며, 또한 무엇인가를 이룰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존심을 가진 한 모든 사람이 다 리더이다. 그런데 그런 자질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었을 때 사회는 시끄럽고 불평의 소리만 늘어난다.

프랑스 철학자가 남미의 인디오 추장을 만났을 때 추장에게 물어보았다. “추장님 당신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추장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앞에서는 사람이 추장입니다,” 그 시대에도 추장은 전쟁의 맨 앞에서 부족을 지휘했으며 남보다 먼저 목숨을 바칠 각오로 전쟁에 임했다.

지금은 민주화시대이고, 민주주의는 리더를 원한다. 보스는 전근대적인 왕조시대의 지도자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박정희나 전두환 식의 통치를 그리워하고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리는 있다. 지도자의 정책을 반대하고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슬며시 독재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 시대에는 보스십이 통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에게는 전근대적인 봉건주의 의식이 남아 있다. 그런 리더에게도 그런 추종자들에게도 그러하다. 우리의 속에 군국 봉건잔재부터 치우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있다면 과거 회귀의 구차하고 답답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 중에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러자 어느 논평가가 “머리를 빌릴 수 있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 두 말에 깊이 음미해 볼 바가 있다.

세종대왕은 사군육진(四郡六鎭)을 개척하는 안건을 조정에 상정하여 여러 달 동안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 그때 세종대왕의 결정은 이미 나 있었던 상태였다. 다만, 조정의 중신들의 의견에 참고할 만한 점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의견을 내는 동안 반대의견을 가진 신하들이 정사에 참여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루한 과정을 끈질기게 견디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른 리더의 가야할 길이다. 한 번 정한 일이 잘못되었다면 바꿀 줄도 알고, 여론을 들어 시민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길도 물어보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공약한 것인데 누가 바꿔, 왜 바꾸자는 거야” 이러면 서서히 독재의 그림자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세종의 삼고초려(三顧草廬)나 옛 어른들의 말씀에 틀린 것이 있었던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뜻이다.

청와대는 저 밑바닥 서민들의 인심을 모른다. 청와대에서 보는 신문이나 언론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세수가 늘어나고 수출도 원만한데, 왜들 죽는 소리를 하느냐고 무시해 버린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냥 세금으로 봉급과 특수활동비를 받으니 서민들과는 다를 수 있다.

통치위정자들이 순간 그들은 세금으로 자신들의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국가 일을 하니까 당연히 받을 것을 받고, 남보다 좀 더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보다 큰일을 하니까. 특수한 활동비도 더 받을 수 있다.

통치의 위정자들이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 줄 잘 모른다. 알아도 무시해버린다. 그렇게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면서 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고 정상으로 오르고 싶은 것이 그들이다. 오로지 북쪽만 바라보고 특수만 노리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이강문 주필 news@yangpa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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